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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존재론적인 해석학과 기초 존재론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9년 08월 12일(월) 00:00
하이데거는 딜타이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해석학을 인식론이 아닌 존재론으로 끌고 간다. 철학적인 스타일에는 ①세계와 인간 자체를 파고드는 존재론 ②사유는 과학이 하고(물리 세계는 물리학, 생물 세계는 생물학, 사회는 사회과학) 철학은 논리적(logical) 틀, 방법을 제공한다는 인식론 ③철학을 이론이 아닌 삶의 실천, 정치, 윤리 문제로 보는 세 가지가 있다. 하지만 존재론에 중심을 두는 것, 방법론·인식론 등 메타과학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 정치, 윤리 쪽에 무게를 두는 것, 세 가지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에 따라 세 가지를 다 갖고 있기도 하고, 전기엔 인식론, 후기엔 윤리학을 하는 등 여러 부류가 있다. 하이데거는 인식론이었던 해석학의 영향을 받았는데, 해석학을 존재론으로, 존재를 이해하는, 세계의 근원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바꾼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의식중심적, 본질주의적 철학을 비판했다.’ 후설은 경험을 중시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이 아닌 ‘경험의 의미’를 파악한다. 그 방식 자체는 고전적이고 본질주의적이다. 그러니까 발표한 책으로 보면 본질주의자인데, 한편으로는 생활세계를 파악한 점에서 양면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후설의 의식중심적, 본질주의적인 철학을 비판했다.
‘인간은 순수 선험적 자아가 아니다. 인간은 현존재, 즉 거기에 있는 존재다.’ Dasein이다. 인간은 순수의식이나 순수 주체성이 아니다. 인간은 순수한 의식이 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거기(Da, 세계, in the world)에 있는 존재다. 만약에 인간에게 순수 자아, 주체성이 있고 그것으로 세계를 구성한다면 세계는 항상 인간 주체의 대상이 된다. 이런 방식의 주체 철학으로 보면 세계는 늘 인간 주체의 대상(object)일 뿐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인간 자신이, 이미 그 세계 안에(in the world)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은 순수 자아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하이데거는 딜타이와 니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방법론적으로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다.’ 하이데거가 니체나 딜타이의 생철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생철학을 추구하는 방법적 측면에서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다. 다만 하이데거는 ‘Phanomeno-logie’를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학문이 아니라 존재의 언어를 파악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현상’이란 드러나는 것으로서 그것은 곧 존재자(ta onta, das Seiende)이다. ‘존재자는 드러나 있는 것이고, 현상은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다.’ 로고스란 언어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언어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Phanomeno-logie를 현상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담론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존재를 이해하려는 담론으로 즉 해석학적인 담론으로 이해한다. 그러니까 드러나 있는 현상을 지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언어를 매개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기본 관심은 존재론이지만, 그 전에 존재를 이해하고 존재에 물음을 던지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하이데거는 이 작업을 ‘기초 존재론’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를 이해하려고 하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존재, 즉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실존(Existenz)과 존재에 대해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사실(Faktum)에서 출발해 존재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를 추구할 수 있다.’ 슐라이허마허의 선이해와는 달리 하이데거의 선이해는 특정한 텍스트에 대한 선이해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선이해이다. 우리는 인생을 명료하게는 모른다. 누구도 인생을 백 프로 규정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생에 대해서 막연하게나마 선이해를 갖고 있다. 그것을 실마리로 존재에 대한 이해를 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세계’와 ‘사물’은 현상학적 주관성과도 과학적 객관성과도 구분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세계와 사물을 현상학적 주관성이나 과학적 객관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세계와 사물은 인간이 현실 세계에서 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술된다. 하이데거는 현실 세계가 결코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과학화된 세계가 아니라 생활세계라는 것을, 손에-잡히는-존재(Zuhanden-sein)라는 것을 다양한 개념을 동원해서 서술한다. 그러니까 세계를 일상성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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