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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까치밥의 미덕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2017년 12월 05일(화) 00:00
‘어저께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왜 앉었나/ 우리오빠 오시걸랑/ 맛뵐려구 남겨뒀다/ 후락 딱딱 훠이훠이’ 정지용 시인의 ‘홍시’ 시를 읽어본다.
붉은 홍시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덕을 발견한다. 까치밥의 미덕이다.
시골 길을 간다. 붉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만나면 잠시 멈추어진다. 쪽빛 하늘에 붉은 감나무는 풍요를 상징한다. 늦가을에 만나는 감나무 열매는 내 창고에도 곡식이 가득 차 있는 듯 행복하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지나는 골목길 쪽 텃밭 모과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길을 가던 동료가 “모과 떨어지면 내가 하나 주워가야지.” 그런데 며칠 뒤 그 길을 지나는데 나무에 모과가 한개도 없다.
왜 그리 섭섭한지? 홍시가 아니라 까치밥처럼 남겨 둘 일도 아닌데 텅 빈 모과나무를 보니 주인이 인정머리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까치밥은 ‘늦가을에 감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까치 따위의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 두는 감’ 을 말한다.
남긴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우리의 삶에 미덕이다. 예로부터 우리네 삶은 하나는 인간이 먹고, 하나는 동물이 먹고, 하나는 자연이 먹게 하였다. 우리네 조상들은 자연과 함께 나눔을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다.
보건대학교 앞 카페 ‘까치밥, 홍시’를 나눔을 실천하는 곳이 있다. 누구나 여유가 있으면 쿠폰을 끊어 놓는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은데 카페에 들린 사람이 여유가 없을 때 ‘까치밥, 홍시’을 의미를 새기며 차를 마실 수 있다.
메모지에 감사의 글을 통해 까치밥을 남겨 놓은 이와 소통할 수 있도록 달콤한 ‘홍시’ 을 먹은 이가 나무에 메시지를 남겨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하였다.
까치밥을 통해 나눔의 공간을 보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미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하다.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며 관심과 배려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다.
‘까치밥, 홍시’ 는 정을 나누는 사람들, 아름답고 고마운 일을 말없이 실천해 주는 공간의 아름다움, 그러한 것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 사회가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혹 길을 가다가 ‘까치밥, 홍시’ 가 있다면 잠시 길을 멈추어 나누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을 여행했을 때, 한국의 쪽빛 하늘에 붉은 홍시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모로코 여행에서 집집마다 매달려 있는 오렌지나무가 인상 깊었다. 매번 가는 식당에서 준 오렌지의 상큼한 맛은 여행길에 지친 이방인에게 피로가 풀린 만큼 일품이었다.
지금도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을 생각하며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군인이 먼 길을 와 말을 묶어 놓은 곳에 오렌지 과일나무를 심어놓은 것은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가이드의 이야기와 성당 앞 주렁주렁 매달린 잘 익은 오렌지 나무의 기억이 더 생생하다.
낯선 이방인이 만나는 이국적인 풍경은 오랫동안 그 나라를 기억하게 된다. 그런데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다면 한 번 더 가고 싶다.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읽다가 ‘계절이 보내온 편지’ 라는 글귀가 마음에 다가온다. 까치밥을 남겨 놓은 감나무는 계절을 기억하게 한다. 감나무는 새순도 다른 나무에 비해 늦다. 완연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순이 돋는다. 그리고 나뭇잎 속에 숨어 노랗고 작은 꽃을 피운다.
가을이면 붉은 나뭇잎과 감이 열려 풍요롭게 한다. 가을날에 나뭇잎 색깔은 참 예쁘다. 늦가을이면 주렁주렁 붉은 감을 받치고 있다. 겨울이면 까치밥으로 썰렁한 겨울을 같이 해 준다.
감나무의 까치밥을 보면서 계절이 보내온 나눔의 정을 생각해 본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 서로에게 따뜻한 온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나에게 작은 여유가 있어 남과 공유할 수 있다면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까치밥, 홍시’ 을 통해 작은 나눔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우리는 그동안 개저씨, 맘충, 된장녀 등 서로에게 혐오감을 주는 언어로 타인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살지 않았을까?
공동체의 삶이 그리운 시대에 서로를 비난하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길은 까치밥을 남기던 선인들의 미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까치밥의 미덕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김남주 시인의 ‘옛 마을을 지나며’ 시를 안내 해 본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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