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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중국 불교의 형성과 동북아 철학의 특징
/조 수 웅 문학박사
2017년 12월 11일(월) 00:00
대승불교는 후한말 중국에 전래된 후, 이어 한국과 일본에도 전래되어 유교, 도교와 더불어 삼교를 형성한다.
위진 남북조 시대의 삼교구류(三敎九流)의 삼교가 유교, 도교, 불교다. 그 중 불교가 실질적으로 꽃피기 시작한다.(위진 남북조 시대는 대략 우리나라로는 삼국시대고, 일본은 헤이안 시대다.)
도교와 불교가 절정을 이루자 유학자들이 관변학문을 넘어 창조적인 철학을 갈망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성리학이다. 성리학이 꽃피면서 불교 전성기는 지나가지만, 오늘날까지도 동북아문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으로 불교는 여전히 남아있다.
소승불교는 동남아에서 꽃피고, 동북아 불교는 이미 존재하던 유교, 도교와 정립(鼎立)을 이루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 도교와는 친근하게 받아들여졌다.
예컨대 불교의 공과 도교가 강조하는 무를 이어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도교의 개념들로 번역되어 이해되는 불교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 했다. 그리고 유학자들은 노자와 붓다를 합해서 노불(老佛)이라했다.
도교는 불교와는 라이벌관계였으나 유교에는 암묵적인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그런데 동북아 전통, 한자문명권의 성격은 형이상학적이지 않다.
서구철학처럼 변화하는 현상세계, 현실세계를 넘어 영원불변의 이데아를 찾는다거나 인도철학처럼 현실세계를 마야, 환각으로 보고 근본 본체인 브라흐마나를 찾는 형이상학적metaphysical인 사고가 동아시아 사고에는 빈약하다.(고작 노자의 도덕경 정도다.)
동북아사회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이어서 대부분 기복종교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생활이다.
예컨대 형이상학적인 믿음으로 교회나 절에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도 사귀고 선물도 받고, 자식 시험 합격을 빌기 위해 간다. 그러니까 동북아에는 문학이나 역사 위주지 철학은 빈약하다.
어쨌든 동북아 문화 사람들의 기질은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서 불교도 동북아 세계로 오면 현실적으로 바뀐다.
그래서 현상계와 본체계를 날카롭게 양분하는 그리스 자연철학이라든가 샹카라의 사유에는 아주 낯설다. 물론 장자의 호접몽 얘기도 있지만, 현실의 실재성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한자문명권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현상계와 본체계를 양분하는 사유를 거부했으며, 현상과 본체, 상과 성, 특수와 보편, 사와 리, 별과 총 등을 양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았다. 이 점에서 헬라스전통이나 인도 전통과 뚜렷이 구분된다.
동북아 불교는 삼론종, 천태종, 법상종, 화엄종, 율종, 진언종, 정토종, 선종 8종(八宗)을 형성한다. 이론적으로는 천태종과 화엄종이 양대 산맥을 이룬다.
말하자면 인도에서 생긴 각종 불교 사상들이 중국에 들어와서 종합, 분류, 체계화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법화경을 중시하는 천태종과 화엄경을 중시하는 화엄종이다.
그리고 인도 불교보다 동북아 불교의 고유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 선불교다.(선종과 정토종이다.) 그러니까 동북아 불교의 독특한 성격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선불교다.(서양에서는 일본을 통해 선불교가 알려져 있어 중국발음이나 한국발음이 아니라 젠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선불교는 인도-유럽어로 사유된 인도불교에 비해 한문으로 사유된 동북아 불교다. 그러니까 분석적인 인도-유럽어로 하는 사고와 직관적인 한자로 하는 사고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북아에서는 분석적인 수학, 철학, 과학이 발달하지 않는다. 대신 한자는 형상figure形狀이고 시적이다. 시를 표현하기에는 한자만큼 아름다운 게 없다.
인도-유럽어와 한자의 차이는 인도 불교와 선불교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선불교는 분석적이기보다 직관적이고 치밀하기보다 심미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정감적이다.
그래서 선불교가 한자문명권 성격을 보여주는 불교다.
동북아불교가 위진 남북조 시대에 꽃피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복잡한 훈고를 하기보다는 직관적이고 간명하고 심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위진 현학이 선불교와 들어맞는 것이다.
불교는 국가의 비호를 받기도 하고 탄압을 받기도 했는데, 북위는 한 때 폐불령을 내려 무려 4만개의 사원을 헐고 300만 명의 승려를 환속시켰을 정도다.
이때 폐불정책은 대개 종교의 성격을 띤다기보다는 정치나 경제의 성격이 강하다.
사원들은 소비는 하지만 생산을 안 하는 집단이다. 또 세금을 안 내는 특권계층이다.
/조 수 웅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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