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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지 팥죽을 먹으며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2017년 12월 19일(화) 00:00
며칠 남지 않은 동지를 맞아 새알심을 빚는다. 삶을 둥글게 살기 위해 동글동글 빚어본다. 동지 팥죽 새알심은 나이만큼 먹어야 오래 산다고 한다. 새알을 빚으며 가족의 건강과 잔병치레를 하지 않길 바라며 새알심을 빚어본다.
어릴 적 동짓날이면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동지 팥죽, 하얀 새알심을 붉은 팥죽에서 숨바꼭질 하듯 찾아 먹었던 기억은 또렷하다.
세월이 지나도 때가 되면 먹고 싶은 동지 죽, 빨간 팥에 담은 이야기를 들으며 새알심을 밤새 빚었던 것이 엊그제 같다.
세월은 가도 혀가 음식의 맛을 기억하듯 때가 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 몇 가지를 들라면 단연코 동지 팥죽이다.
요즘에는 집에서 동지 죽을 끊여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예전에는 모든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새알을 빚었다.
필자에게 있어 동지 팥죽과 팥죽을 먹는 계절은 다르다. 팥죽은 단연코 여름철이 제 맛이다. 여름철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시간쯤이면 어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했다. 너른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을 펼쳐놓고 밀가루 반죽을 썰어 놓으며 옆에서 밀가루를 묻혀 면을 털었다.
해가 어둑해지면 모닥불과 함께 마당에서 팥물이 펄펄 끊었다. 팥물이 끓어 오르면 어머니는 끊는 팥죽 물에 면을 넣었다. 더운 여름날 해질녘에 먹었던 팥죽은 참 맛있었다. 여럿이 둘러 앉아 호호 불어가면 먹었던 팥죽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음식은 위대하다.
여름날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먹는 팥죽은 고단한 삶속에서 달콤한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도 쪽은 팥죽에 설탕을 넣어 달게 먹는 사람들이 많다. 팥죽 끊인 날은 마을이 잔치 날이다. 참석하지 못한 이웃은 양푼에 담아서 나누어 먹었다.
동지 팥죽은 겨울철이다. 새알심을 빚을 때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모여 앉아 새알심을 빚는다. 그래서인지 음식의 맛 기억은 같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동지 팥죽을 먹으며 가족들의 건강을 빌며 한해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는다.
지방마다 동지 팥죽을 먹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남은 동지 팥죽을 밖에 내 놓았다가 차가워진 새알 옹심을 찾아 먹는 것이다. 새알옹심이 단단해져 씹어서 먹으며 찹쌀의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예로부터 팥으로 만든 죽을 먹거나 대문이나 벽에 뿌리며 가족의 건강과 새해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사나 재앙이 생겼을 때도 팥죽, 팥밥, 팥떡을 해 먹었다. 요즘도 고사 때 팥떡을 해 먹는 건 이런 풍습에서 유래한다.
동지팥죽이 액을 면하게 해주는 걸로 여겨지면서 이웃 간에 나눠 먹는 풍습도 생겼다. 동지 팥죽을 통해 이웃과 정을 나누고자 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웃과 팥죽을 나눠 먹었다.
올해도 전국의 수많은 사찰이나 지자체, 회사, 단체 등이 동짓날을 전후로 이웃과 팥죽을 나눠 먹는 행사를 갖는데 이 또한 예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의 일환이다.
필자는 팥죽이 먹고 싶으면 가끔씩 가는 곳이 있다. 팥죽을 먹기 전에 먼저 보리밥과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나물 반찬이다. 보리밥에 상추 겉저리와 고추장을 넣어 비빔밥을 비벼 먹으며 고소한 맛이 온 입에 감긴다. 이집에서 먹는 팥죽은 일미다. 멀리 입소문이 나 제때를 맞추지 못하면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 팥죽집이다.
이집의 팥죽은 주말이면 가족들이 함께 온다. 팥죽을 먹으러 오는 이들은 엄마의 입맛을 찾아서 온다. 팥죽도 맛있지만 보리밥이 일미다. 보리밥과 함께 주는 반찬은 계절마다 제철 나물을 먹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열무로 담은 김칫국과 겨울이며 동치미 맛이 감칠맛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음식이 배고픔의 대상보다는 그 이상의 것이다. 그러므로 철이 되면 나도 모르게 혀가 음식을 기억한다. 기억의 음식을 먹으며 위안을 준다. 우리의 언어에 속을 풀어준다고 한다. 그것은 배고픔의 해결을 넘어 마음의 위안인 것이다.
‘백석의 맛’ 이라는 책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인간의 안과 밖을 넘나들고 이는 다시 인간의 안과 밖이 음식에 의해 연결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음식을 통해 ‘나’ 라는 주체를 이루는 모든 것과 외부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지, 세계란 무엇인지, 나와 세계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음식은 배고픔을 넘어 영혼까지 지배한다는 것이다.
동지팥죽이 먹고 싶다. 때가 되면 내 몸이 기억의 음식을 찾는다.
동지 팥죽을 먹으며 나의 세계를 느껴본다. 음식을 먹으며, 음식을 통해 나와 세계가 연결하는 기억을 찾는다. 그 맛의 기억이 위안을 준다. 그러므로 맛은 위대하다.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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