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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8(수) 19:26
잊혀진 광주·전남지역 민주열사 재조명


영화 ‘1987’ 흥행 계기… 기혁·이한열 등 8명 망월동 옛 묘역 안장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01월 08일(월) 00:00


영화 1987을 계기로 1980년대 중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광주 망월동 옛묘역에 안장된 민주열사들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7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광주·전남 연대회의에 따르면 지난 1985년~1987년 민주화에 헌신하다 숨져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묘역)에 안장된 광주·전남지역 민주열사는 기혁·이한열·박태영·표정두·박선영·신호수·강상철·이재호(안장순) 등 8명이다.
이들은 5·18 민중항쟁 진상규명, 대통령 직선제 관철, 통일·노동운동 등으로 민주화 운동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연대회의는 설명했다.
1984년 3월 전남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기혁 열사는 이념서클 ‘생탈’에 가입해 전두환 군부 독재 반대 투쟁, 학원 민주화 투쟁을 펼쳐왔다.
기 열사는 부당유급제(한 과목이라도 낙제 점수가 나오면 재시험 기회를 주지 않고 낙제) 반대 투쟁 중 행방불명됐다가 1985년 1월16일 무등산 바람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으로 전남대는 학칙 원상 회복, 유급생 46명 전원 구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한열 열사는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5·18 항쟁을 공부하며 군부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에 분노했다.
1987년 6월9일 ‘6·10대회(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그해 6월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지만 그는 7월5일 숨졌다.
박태영 열사는 1987년 목포대 경제학과와 학보사에서 활동하며 42일간 독재에 저항하는 1인 시위를 벌여왔다. 같은 해 12월9일 ‘군부독재 타도’ ‘제도교육 철폐’ ‘민주교육 실시’를 외치며 목포대 후문에서 분신해 숨졌다.
표정두 열사는 1983년 호남대 무역학과에 입학, 군 제대 뒤 85년 3월 복학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하면서 이듬해 4월 미등록 제적됐다.
야학 교사와 공단에서 일하며 광주항쟁을 알리는데 힘써왔다. 표 열사는 1987년 3월6일 ‘광주사태 책임져라’ ‘내각제 개헌 반대’ ‘박종철을 살려내라’ 등을 외치며 서울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분신해 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18 37주년 기념식에서 표 열사의 정신 계승을 강조한 바 있다.
박선영 열사는 1985년 서울교육대 수학교육학과에 입학한 뒤 학회 편집부와 학보사, 교회 대학부 연합모임에서 민주화 운동을 펼쳐왔다.
박 열사는 이듬해 직선제를 요구하는 5·3 인천 투쟁에 참가했으며,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었다는 이유로 교수회의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는 학내 민주화와 미 제국주의 배격을 요구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63년 여수에서 태어난 신호수 열사는 1986년 6월11일 경기 인천의 한 가스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경찰에 연행됐다. 연행 8일만인 6월19일 여수 대마산 동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방위병 복무 중 포상 휴가를 갈 목적으로 모아둔 대남전단을 문제 삼아 연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는 인권 유린과 공작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도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신 열사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남 출신인 강상철 열사는 1985년 목포전문대 건축과에 입학, 민주 회복 국민회의와 청년 단체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여왔다.
이듬해 6월6일 목포역 광장에서 5·18 진상 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양심선언 뒤 분신, 20일만에 숨졌다.
이재호 열사는 1983년 3월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 미국에 대한 광주학살 책임론을 제기하며 반미 운동을 벌여왔다.
1986년 3월18일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4월28일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 모 건물 3층에서 전방 입소 반대 투쟁을 벌였고, 경찰 진압 과정에 분신해 28일만에 숨졌다.
이를 계기로 반미 투쟁이 확산됐으며, 그는 2001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한편 5·18 옛묘역은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숨진 시민들이 묻혔던 곳이다. 1997년 조성된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으로 5·18열사들이 옮겨진 뒤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통일운동 등에 앞장서다 숨진 열사들이 안장됐다.
/김성은 기자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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