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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권의 철학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04월 23일(월) 00:00
무타질라파는 신의 속성을 얘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신은 살아 있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로 전락된다. ‘신은 위대하며 아름답고 하늘나라에 있다’고만 해야 한다. 탁자를 예로 들어 탁자의 색도, 모양도, 어디 있는지도 얘기하지 말라면 그 탁자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그러니까 꾸란에 써 있는 속성들을 합리적으로 해석해(철학을 부정하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자 것이다. 신의 키가 몇 센티냐? 피부가 얼마나 고우냐? 물어보면 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쉬아리는 축자적으로 받아들이되 얼굴이 어떻게 생겼고, 키가 얼만지 등 형태figurative의 묘사는 묻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쉬아리가 한 얘기 중에 중요한 하나는(중세 철학을 관통하는 것 중의 하나다) 신의 말, 로고스가 신의 정신 속의 형상들, 이데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를 플라톤과 비교해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들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신학에서는 신의 관념이 이데아들이다. 우리 관념은 그냥 관념인데 신의 정신 속에 있는 관념 하나하나는 이데아들이다. 마치 우리 마음속에 관념이 있듯이 이게 신의 마음이다. 이 관념이 현실 세계 속으로 실현된 게 신이 말을 하는 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면 신의 머릿속에 빛이라는 아이디어가 있다가 로고스로 나와서 빛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과는 다르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끌고 들어오는데 그것을 객관적 존재들이 아니라 신의 마음으로 넣어 버리는 것이다. 이데아가 사물에 구현된 것도 신의 창조creation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생각은 중세시대 전체의 공통 사회문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플라톤주의와 유대-기독-이슬람주의의 종합을 만들어낸다.
이에 비해 시아파는 신비주의를 견지했고, 이슬람 신비주의는 때로 수피즘(신과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고, 이 세상에 신의 사랑과 지혜가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주는 다양한 신비적 실천 방식들로 구성됨)의 경향을 띠기도 했다. 이슬람에는 교회나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신비주의가 이단으로 무시되지도 않았다. 이것이 서구와 큰 차이다.
9세기 정도가 되면 그리스의 학문이 이슬람 세계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팔사파 철학이 형성되었다. 팔사파가 이슬람 지식인들을 사로잡으면서 신학과의 갈등이 야기되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는 꾸란을 절대적 진리로 삼고 종교적 신학적 차원에서만 얘기가 되었는데 그리스 철학이 이슬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상을 접하게 된다. 물론 철학자들이라고 이슬람교의 근본을 부정한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그 테두리 자체를 깬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문화적 테두리를 깨고서 바깥을 보며 산 건 몇 백 년밖에 안 된다. 그 전까지 모든 문명은 그 자체 내에서만 움직였다. 한자 문명권은 그 문명권 안에서 움직이고, 이슬람은 이슬람, 넓게 보면 지중해 세계까지 그 자체 내에서만 움직였다. 그런 것을 상대화해 보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 200년 정도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이슬람 전통 내에서이긴 하지만 그리스적인 사고를 끌고 들어온 사람들하고 이슬람교 원래 꾸란 자체로 사고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에서 철학이란 곧 그리스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리스의 신들, 철학자들이 이슬람 문화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종교적으로는 헤르메스주의, 신엠페도클레스주의, 신피타고라스주의 등이 등장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통 종교들, 조로아스터교라든가 이슬람교 등과 대결을 벌이고 또 철학적으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누스가 등장하게 되는데 주역은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다. 이들이 말하는 플라톤은 신플라톤주의이고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신플라톤주의자로 오해된다.
전체적으로 수학, 철학, 의학, 음악 등을 아는 박식 스타일이 지배를 했다. 옛날 지식인들이 대개 의사이면서 철학자고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였다. 이슬람은 불안정한 모래산이라 시각문화는 발달하지 못하고 대신 음악이론이 발달한다. 사막에선 볼 건 없지만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유목민이나 사막 계통의 사상들은 보는 문화, 그림의 문화가 아니라 듣는 문화, 소리 문화, 음악의 문화다.
연금술로 유명한 ‘자비르 이븐 하이얀’, 백과사전적 사유를 전개한 ‘이흐완 알사파’, 의사 겸 철학자인 ‘라제스’, 문법학, 언어철학 시부에 박식함으로 유명한 ‘비루니’ 천문학으로 유명한 ‘이븐 알 하이탐’ 등 많은 과학자, 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화학에 보면 알콜처럼 ‘알’자 들어가는 게 많다. 이게 다 이슬람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러니까 ‘알’ 자 들어가면 대충 이슬람 계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슬람 학자들은 교회나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서구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로웠다. 파문을 당하거나 화형을 당하는 것은 서구의 경우고 이슬람은 심한 경우 반대파를 폭행하는 등의 사건 정도다. 국가 차원에서 이상한 얘기한다고 파문시키는 것은 없다. 서구보다 훨씬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 철학의 아버지 ‘알 킨디’는 9세기 사람인데 헬라 문헌들이 아라비아어로 번역되면서 진행되는 과학운동에 참여했다.
수학자이면서 의사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플로티누스의 저작의 발췌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잘못 알려져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이란 제목으로 유통되는데 알 킨디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로 알고 공부했는데 사실은 그게 플로티누스인 것이었다.
알 킨디는 철학적 추구와 예언자적 계시의 결합을 꾀했다. 그러니까 서구 중세의 학자들은 항상 맨 처음에 신앙과 이성 문제에 부딪친다. 무타질라파와 아쉬아리도 그런 문제 중 하나다.
신앙을 더 중시하냐? 이성을 더 중시하냐? 이성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 ‘알아야 믿지’라는 입장이 있다.(*이 글은 이정우 교수 ‘아트앤스터디’ 수강록에서 발췌·요약·첨삭한 것임을 밝혀둔다.)
/조 수 웅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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