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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3(목) 09:26
세습과 대물림 사이에서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09월 19일(수) 00:00
올해는 유난히 더웠다. ‘관측 이래’라는 말을 쓰면서 여름을 견뎠다. 국지성 폭우가 무더위를 누그러뜨려 가을을 맞았지만 재산피해도 많았다. 어느 하나 순탄한 것이 없었다.
여름만큼이나 한반도를 뜨겁게 만든 내외사건들이 많았지만 종단의 수장들이 벌인 문제로 한반도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성스러움’을 잃어버린 패악한 현실에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자율종교이든 타율종교이든 불교와 기독교는 다시 얽어매려(re-ligare)고 부단히 몸부림쳤던 것이 사실이다. 인격종교가 무너진 한반도, 본연의 실존을 회복하지 않으면 사회구원은커녕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실체가 되고 말 것이다.
명성교회 김삼환·김하나 부자가 벌인 세습논란으로 한국기독교의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내보였다.
결국 교단에서는 ‘세습금지법유지’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로 남았다. 김삼환은 교단과 반대세력을 향하여 ‘마귀’라 운운하였지만 그는 교단법을 제일 먼저 지켜야 할 수장(총회장)이기도 하다.
명성교회가 보여주는 은혜의 방법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일방적 자기입장 일변도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내가 좋은 것은 은혜이고, 내가 싫은 것은 마귀의 역사라는 것이다. 유치찬란한 신앙관에 묶인 10만의 신도들, 그들의 신앙이 궁금하다.
교단에서도 ‘은퇴하는’과 ‘은퇴한’이란 자구해석을 두고 싸움질을 했는데 무슨 말이 구원 받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세습’이란 말은 기업적인 용어이니 ‘대물림’이라는 말이 맞는다고 총회장은 인터뷰했지만 더 종교적인 용어가 아마 대물림인가보다.
자구 하나에 목을 매는 짓은 마치 번역된 성서만이 유일한 권위라는 전제를 부여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성서 번역의 오류가 얼마나 많은 데 말이다. 이러한 형태는 문화적 껍질을 골라내기가 어렵고, 문화적인 상징기능에서 의미를 분리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여 저들은 왜 무조건적인 절대화에 빠졌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훌륭한 영적 지도자는 내가 진정한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데 있다. 이미 세습을 했거나 또한 세습을 준비하고 있을 한국교회는 지독하게 종교를 비판하던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이제부터라도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믿음 말고 진정한 신앙을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세습과 대물림 사이에서 참 아름다운 신앙 하나를 만났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강희근 시인을 그의 문학연구실에서 뵙게 되었다. 연구실 한편에 세워져 있는 포스터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전주에서 다시 올리는 연극(시극) 포스터로 ‘순교자의 딸 유섬이’였다.
시인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유섬이의 신앙을 소개하고자한다.
우리나라에 시극을 쓴 작가들이 여럿이 있다. 시극은 극시와 달리 연극을 위해 쓴 것으로 70년대까지 이어져오다 명맥이 끊겼다. 하지만 최근 강희근 시인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되었다. 고희를 넘긴 시인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천주가사 연구가 하성래 교수가 쓴 ‘거제로 유배된 유항검의 딸 섬이의 삶’(교회와 역사, 2014년 4월호)이란 자료를 바탕으로 시극을 썼는데, 하 교수가 거제도호부사를 역임한 하겸락의 문집 ‘사헌유집(思軒遺集)’의 해제를 집필하다가 ‘부거제(附巨濟)’ 조에 들어 있는 유섬이의 사연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자료에 숨은 감동을 더한 것이 ‘순교자의 딸 유섬이’가 탄생한 것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부모를 순교로 잃고 큰오빠 내외, 둘째 오빠까지 처형된 뒤 거제부 관비로 유배되어 동정을 지키며 71세까지 살다간 ‘정덕’의 사람 유섬이의 거룩한 이야기이다.
유섬이가 천혜의 유배지 거제에서 정덕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지켜내기 위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9살 때 유섬이가 거제로 유배되어 16살이 되면서 그의 동정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양어머니에게 부탁해 흙돌집에서 25년 토굴생활을 하였다.
유섬이는 총명하였고, 아리따웠으며, 손재주가 남다른 신앙인이었다. 그녀가 신앙, 자신을 고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은장도를 품고 있었듯이 기도(주기도)와 책(‘성경광익’, ‘천주실의’)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부사가 관비의 비문을 적고 제사를 지내줄 수 있었던가.
하지만 유섬이는 거제도의 성스러움이었으며 민중의 진정한 신앙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서학을 신앙과 종교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남인들이 박해를 통해 수 없이 피 흘린 이 땅에 기독교가 세워졌고 민중과 함께 살아온 역사에 개혁된 교회가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개혁교회의 중심사상 중 하나가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한다’는 것 아니던가.
이제는 제도화된 종교에 힘쓰지 말고, 성스러움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신앙(faith)의 본질을 바로 세워나가는 건강한 기독교가 되기를 바란다.

/정홍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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