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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7(수) 20:19
탄압당한 우리 민족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10월 11일(목) 00:00
임진왜란 때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한 학자 지봉 이수광은 다음과 같은 견문을 적어 남기고 있다.
폐허가 된 동구 밖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한 처녀를 지나가던 스님이 본다.
절에 데리고 가 살리고자 업으려 들었으나 죽을힘을 다해 거절했다.
남녀유별의 도덕적 심성이 죽음보다 강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절에 가 밥을 지어다 처녀 앞에 놓아두고 후에 다시 가보았더니 손도 대질 않고 굶어죽어 있더라 했다.
차라리 여승에게 밥을 들려보냈던들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한국 여성에게 있어 남녀유별 사상이 얼마나 강한가를 이로써 예시하고 있다.
천주교 탄압 때 악랄한 옥리(獄吏)들이 여신도에게 가하는 배교(背敎) 고문은 곧잘 옷을 벗겨 남자들 앞에 노출시키는 일이었다.
그 강인한 유별(有別)사상을 악용,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그 어느 육체적 고문보다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너무나 한국적인 윤리상황을 가장 악랄하게 악용한 것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었다.
3·1운동이 지난지 100년이 되지만 요즈음도 이따금씩 내외에서 발굴되는 탄압문서를 보면 치가 떨리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완벽한 증거인 탄압 조사보고서를 읽다보니, 만세 부르다 잡혀든 부녀자에게 가한 고문의 대부분이 이 나체고문이었다는 점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했지만 죽지도 못하게 하고 땀과 피로 범벅이 된 나체를 말려준다고 벌건 숯불이 담긴 다리미질까지 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분통이고 원한이고 원망이고 쉬이 잊어버리는 너그러운 우리 한국인이라지만 비인간성의 어느 한계 이하까지 너그러워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한국인은 이런 ‘민족’이기에 심장을 파고드는 말도 드물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한데 몇해 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사건’에서 보듯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종종 집단편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항하기 힘든 권위로 포장됐지만 ‘민족’이란 단어의 등장은 그리 오래지 않다. 실체도 불분명한 개념이다.
조선 역사와 기록에서 민족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말을 찾기 힘들다. 한국에서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란 혈통주의로 통상 이해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조상’으로 추앙받은 대상은 단군이 아니라, 중국 고대 상(商)나라에서 건너온 ‘기자(箕子)’였다.
이런 인식은 ‘소중화(小中華)라는 사대주의로 흘렀고, 단군은 조선왕조 500년 내내 잊어진 인물이었다.
유럽에서 민족이 혈통에서 유래됐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켈트족이기도, 이베리아족이기도, 케르만족이기도 하다.
민족이 ‘집단심리상태’이며 ‘일종의 무드’라고 까지 정의되는 배경이다.
우리가 민족을 의식하고 담론을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조선왕조가 붕괴위기에 처했을 때부터다.
최남선이 ‘한국 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비로서 그 모습을 구체화했다.
앞에서 언급한 식민지의 고초를 겪으면서 단군은 다시 민족조상으로 모셔졌고, 해방 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단군신화가 공식화됐다.
한국 사례에서도 보듯 민족에 대한 기억은 시대마다 다르다.
‘민족 과잉’은 경계의 대상이다. 특정정치에 악용되면 ‘피를 부른다’는게 역사의 교훈이다.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믿는 나치치하의 독일인, ‘신의 민족’이라며 침략전쟁을 감행한 천황제하의 일본인은 반면교사다.
‘중국몽’을 앞세운 시진핑의 중국에 ‘중화주의’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도 배경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2박3일 방북 행보에서 가장 두드러진게 민족에 대한 강조다.
‘평양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 민족자결원칙을 재확인”한다고 했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도 강조했다.
능라도 경기장의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행한 7분간의 연설에서도 민족은 10번이나 언급했다.
물론 북핵 의지와 통일 염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족주의는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북에서 ‘우리 민족끼리’는 또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사회주의에선 미추와 선악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계급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시초인 최남선은 말년에 와서야 “지나고 보니 민족이란 집단적 대립물이 만들어 놓은 함정”이라고 했다.

/고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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