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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2(월) 18:51
문신 패션 하는 십대들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10월 17일(수) 00:00
벌써 16년 전이다. 아들 봤다고 덩실거리며 춤추던 J의 흥겹던 날이 생각난다. 지적장애자인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그렇게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J는 필자에게 아들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물가에 심어진 종려나무처럼 살았으면 싶어 종수(棕洙)로 지었던 기억이 난다.
작명가가 아닌 필자가 지은 이름이 촌스럽다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된 J의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부터 순조롭지 못하더니 최근 학교를 떠나야했다. 아들의 문제는 문신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문신을 새긴 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개선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교칙에 따라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듣고, 타이르기도 여러 번 지난 여름방학에 문신을 지우기는커녕 또 문신을 하였다. 결국 학창시절의 큰 오점을 남기며 스스로가 벗어나야 했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환경을 탓하거나 지배당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환경을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필자는 청소년들에게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J의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시 한편 원고료 받기 어려운 시대에 모처럼 원고료가 생기면 기념하듯 건네주며 열심히 하자고 부탁하던 필자도 허탈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물론 그 애가 청소년기에 힘들어할 것이란 것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그 애의 방식이 너무 낯설기만 하다.
몸이 성치 않은 할머니, 교통사고 후 장애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지적장애인 어머니를 둔 그 애도 몹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대하는 그 애의 적응과 태도는 문신하고 방황하는 정도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아파트 청소, 폐지 주우며 생계수단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 애는 지금 특별관리 대상 중이다.
어떤 아이들은 아르바이트하며 청운의 꿈을 키우느라 비틀거리고 있는데 그 애의 방황이 언제 끝날지 애처롭기만 하다.
문신하는 아이들에 대한 댓글을 보았다. 눈에 띄는 댓글 중에 “평생 자영업할거면 문신해도 상관없는데 대기업이나 고위공무원 쪽 꿈꾼다면 타투는 꿈도 꾸지 마라”와 “고급차에 스티커 안 붙이듯 자기 몸이 비싸면 문신 같은 건 안한다고 누군가 말했었지”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아직 문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십대들의 문신은 호기심을 넘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문신을 볼 때마다 뿌듯하지만 입대나 취업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말에 후회하며 지우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신이 패션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문신을 지우고자하는 학생들, 하지만 문신 새기는 비용보다 지우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지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경찰청과 대한피부과학회는 ‘사랑의 지우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최근 언론에 16세 콜롬비아 소녀가 문신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 신세가 됐을 뿐만 아니라 치료 중 유산까지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녀는 “절대 나를 쓰러지도록 버려두지 마”라는 문장이 맘에 들어 오른쪽 가슴 밑에 1만4900원을 주고 문신을 하였다. 하지만 좌골신경과 척수까지 세균에 감염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 성장기 문신은 감염 등 부작용이 따를 뿐만 아니라 불편한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타투 업계 종사자가 2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렇듯 보편화돼가고 있는 문신에 대하여 불량아 등 부정적인 시선이 많고, 의료인이 아닌 무자격자의 시술은 불법의료행위로써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주어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머리염색 정도로 인식하지 않는 ‘비주류 문화’에 속하는 것이 문신이다.
새기기는 쉬워도 지우기는 어려운 문신, 마음의 상처와 고통의 흔적으로 남지 않도록 신중히 고려해야할 것이 문신이다.
J의 아들, 그 애가 자신의 삶을 더 치열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만이 한 번의 인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가슴 위에 새긴 나비문신을 보고 관능에서 모성으로 가는 이국의 정에 대하여 쓴바있어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야바위판 딱지 같은 붉은 나비가/여자의 젖가슴에서 팔랑거린다//춤추는 나비가 뜨겁다//토렴한 국밥에 집어넣어도 죽지 않던/수저의 나비 기억한다/뼈다귀 고는 삼십년의 솜씨가/한 모금씩 뜨겁게 날아들어/어머니 젖이 입천장 벗겨지도록/뜨거웠을까 생각한다/인생 마디 같은 아홉 마디/구절꽃차 마시는 내내/구절초 한 다발 안아주던 젖가슴에다/꽃을 천천히 그려놓은 진드기/그 가을이 우러난다//뜨거운 포유/젖에 촉수박고 매달린/삭정이 같은 사막아이가/바람을 안고 마르는 눈곱 사이/햇무리에 타투가 익어간다”(졸시 ‘젖나비’ 전문)
/정홍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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