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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추 가스통 바슐라르 등장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9년 04월 15일(월) 00:00
/조 수 웅 문학박사
과학 본연의 의미로 보면 베르그송, 하이데거 식의 비판이 적절하지 않다. 과학과 기술은 동일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스통 바슐라르(Bachelard)가 과학과 기술의 균형을 잡는다.
그러니까 니체, 베르그송, 하이데거, 메를로 퐁티의 과학관과 대비되는 게 바슐라르다. 그는 현대 합리주의자이자, 현대 플라토니즘의 전형이다.
바슐라르는 니체 이후의 흐름에 전면으로 반대하면서 합리주의를 재건한다. 그는 니체, 베르그송, 하이데거의 얘기가 철학적으로는 설득력이 없고 예술이나 시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예술 쪽과 수학(철학) 쪽을 중화시켜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간단하게 얘기할 수 없는 문제다. 어쨌든 베르그송이 인간의 이성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고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것은 틀림없다.
시는 전반적으로 액체적이라서 ‘지속이란 흐름이며 액체적 사유를 유추한다.’를 의식하면 더 잘 보인다. 시적인 사고는 합리적인 사고와 변별되는 중요한 요소가 액체적이라는 것이다.
‘지속의 첫 번째 속성은 연속성이고, 베르그송은 제논의 패러독스가 연속적 사유를, 연속적 운동을 불연속적 공간의 합으로 환원시킨 첫 번째 예라고 생각한다.’ 니체 철학의 출발점도, 엘레아 학파 비판이다. 엘레아 학파의 전통이 17~18세기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니체에 이르러서 엘레아 학파가 결정적으로 비판받았다. 베르그송도 니체를 이어서 엘레아 학파 비판에서 출발한다. 제논처럼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는 분할할 수 없는 운동을 공간에 옮겨놓고 잘라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자체가 왜곡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유는 과학적 합리성 및 형이상학적 사변의 근저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베르그송은 과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무한소 미분이라고 본다.’ 이 미적분은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적분의 창시자가 라이프니츠와 뉴턴이다.
라이프니츠의 철학 자체가 미적분과 얽혀 있어, 모나드의 연속성을 무리수에 비유한다. 그게 은유(메타포)가 아니라, 실제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 후에도 무한소 미분은 인식이 많이 안 되어 있는데, 철학은 시대마다 다른 관계를 맺어왔다.
중세에는 종교나 신학과, 근대에는 과학과 주로 관계를 갖고, 19세기에는 맑시즘 같은 정치, 또 문화·예술과 관계를 맺는다. 관계 맺는 방식이 복잡한데 오늘날에는 철학과 과학의 관계가 멀어졌다.
그런데 근대 철학의 역사와 미적분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베르그송과도 중요한 관련이 있다. ‘무한소 미분은 유클레이데스(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배제된 연속성과 운동성, 그리고 시간성을 도입함으로써 사유의 역사에 큰 이정표를 새겼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하나하나 도형은 에센스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희랍 때는 에센스라는 말은 없고 현대 용어이다.
사르트르 용어로는 즉자적in itself으로 또는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배제된다. 그러니까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 + 원은 안 그린다. 삼각형도 아니고 원도 아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삼각형은 삼각형이고 원은 원이어야 한다.
이데아의 세계는 불연속의 세계다. 삼각형이면 삼각형이고 원이면 원이다. 이런 도형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이상한 것이다. 모든 도형이 에센스로서만, 본질로서만, in itself로써만 다뤄진다는 뜻이다. 거기에 시간은 없다.
그러니까 유클리드 기하학에는 끊김이 있는 곡선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작도한다는 것은 시간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차이다.
고대 기하학에서는 전혀 다룰 수 없었으나 오늘날 수학에서는 곡선은 얼마든지 다룬다. 고대 기하학에서는 모든 기하 도형은 그 자체로, 본질로,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거기서 한 발 더 가면 이데아다. 그런데 근대로 오면 본질이 아니라 임의의 도형들이고, 또 시간을 초월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작도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고대 플라톤 형이상학과 베르그송 철학이 그대로 연관된다.
‘무한소 미분’은 ‘극한으로의 이행(passage a la limite)’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했다. 이렇게 베르그송은 무한소 미분이 연속성을 정복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학에는 퀄리티가 없기에 온전하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학의 세계는 색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비합리주의(irrationalism)이다.
여기서 irrational란 말이 일상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쓸 때 말이 아니고 분석적 사고를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rational한 것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irrational하다는 것이다.
실재는 베르그송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하면,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이다. 실재는 무수한 질(質)들이 출렁거리는 운동성이다. 인간의 범주들이 개념들이, 수식들이, 아무리 잡으려 해도 온전하게 잡히지 않는 그런 운동성이다. 그래서 다질성의 실재를 등질성으로 바꿔서 이해하려는 분석적 사고의 한계를 베르그송은 끝없이 비판하는 것이다.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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