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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9(목) 18:34
9월에 보내는 가을 편지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9년 09월 10일(화) 00:00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울타리에 감들은 붉은 물이 들었으며 길가 담장 모퉁이에 붉은 접시꽃은 가을 하늘로 향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맨드라미꽃의 부채 살처럼 펼쳐진 모습을 보니 가을의 여정으로 한발 들어온 것 같다.
9월이 오면 흰 소금 뿌려 놓은 메밀밭에 고개 숙인 수수나무의 흔들림 아래로 논두렁 새하얀 억새꽃이 술렁임이 길 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 가을에 그리운 단어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가을날이면 아득히 들리는 소리가 어떤 소리일까? 가을이 들어설 무렵이면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의 소리다. 바람의 소리에는 많은 사연들이 담아 있다. 가을바람의 소리는 갖가지의 소리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을의 소리는 어떤 단어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벼이삭소리다. 사브작 사브작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소리는 누구나 들어도 행복하다.
농부는 추석이 가까워질 무렵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판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봄부터 여름까지 1년 동안 정성을 들였던 농작물이 출렁이는 소리를 듣는 농부의 심장은 뛴다.
주말 한반도를 지나간 링링 태풍은 수확의 기쁨을 맞이하는 농부가 바라보는 들판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들판으로 향한다. 시린 가슴을 안고 논둑길을 걷는 농부의 발걸음은 아프고 더디다.
어느 시인은 ‘가을은 소리 없는 침묵의 언어’ 라고 했다. 침묵으로 나타내는 가을의 소리는 무엇일까? 봄이 소리 내어 자신을 알린다면 가을은 침묵으로 성큼 계절을 알린다. 침묵의 언어를 들어 보려고 들길을 걸어 보았다.
가을 들판에 나섰더니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의 울음이 지쳐 있다. 더위에 목청껏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계절을 지내더니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늙은 매미의 울음은 아프고 서럽다.
가을의 언어는 나뭇잎의 부딪치는 소리가 어제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나뭇잎의 소리는 이번 태풍에 지쳐 축 쳐진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을의 언어는 시골 할머니의 곰삭은 소리로부터다. 고추를 따서 말려야 한다. 붉은 고추가 물들면 할머니의 마음도 붉게 물들다. 초승달처럼 구부러진 할머니는 하늘보다는 땅 길을 보며 밭으로 나간다.
가을 편지를 하나 보내본다. 고추를 따러 가는 할머니의 언어를 들어본다. “오메 이 자것이 빨리도 익어 부네. 내일 모레나 딸려 했는디. 뭐 이리 급하게 익었냐? 오마야 우짠다냐. 몸이 부지런해야지. 못쓰겠네. 고추는 익어 가는디 고추 딸 사람은 없고 에고 이놈의 인생 죽으면 삭아 문드러질 인생인데… 인나야제 인나야제” 등 굽은 할머니의 고추 따기로 시작하는 아침은 아픔을 온 몸으로 견디며 하루를 연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 정리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좋은 시 한편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이기철 시인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의 한 부분을 읽어본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일본으로 지나가는 태풍의 영향으로 월요일부터 한반도에도 계속 비는 내린다.
다행이 추석 연휴부터는 비가 멈춘다. 추석에는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둥근 보름달처럼 따스하고 밝은 언어를 떠올려 보자.
가을 편지를 보내보자. 가장 따뜻한 가을의 언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가을 편지를 보내보자. 붉어가는 나뭇잎 한 잎 같은 언어를 만들어보자. 당신의 한 줄의 글이 용기와 힘을 주는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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