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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9년 12월 09일(월) 00:00
/조수웅 문학박사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5-1951)의 철학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체계가 특이해서 많이 회자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빈의 유태계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공학을 전공하며 프로펠러를 설계했는데, 그 과정에서 관심이 수학에로, 철학에로 기울었다고 한다. 그는 프레게의 권유로 러셀 밑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철학자 무어, 경제학자 케인즈 등과 사귀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에 배낭에 넣고 다니던 수첩에 생각들을 기록해놓았다가 그것을 토대로 1918년에 논리철학 논고를 출간했다. 출간한 후에 ‘내가 이제 철학을 완성해서 할 게 없다’고 철학을 떠났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상속된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었기에 그가 사는 집에는 책상 하나만 있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자기 삶과 철학에만 몰두했는데, 애들을 좋아해서, 어린애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행복으로 삼았다. 그런데 수업방식이 너무 독특하다고 학부모들로부터 동성애자로 몰려 쫓겨난다. 그 후 수도사의 정원사(gardener)가 되기도 하고, 누이의 집을 설계해 건축하기도 하다가 1929년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자기가 세웠던 그 철학을 공격했다. 그리고 후기 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철학적 탐구에 매진한다.
그는 “우리의 삶은 꿈과도 같다. 좀 나을 때 단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깨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깊이 잠들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분석철학은 명료하고 과학적인 맛은 있지만, 삶에 대한 깊은 얘기나 윤리적, 정치적인 절박함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주 메마른 철학인데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러 분석철학이 하나의 철학적인, 형이상학적인 향기를 띄게 된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해서는 냉혹했다. 고독한 철학적 삶이었고, 순수하고 엄격한 사상가, 뎅크(Denker)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핵심을 요약하면, 말로 할 수 있는 건 명확하게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한다는 것 이다. 매우 칸트적이다. 칸트식으로 풀어내면, 현상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물자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과 형이상학을 대비시킨다. 과학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명확하게 해야 되고, 형이상학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 책에 전개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이라고 한다. 언어는 실재의 그림이라는 얘기다. 예컨대, ‘컵이 탁자위에 있다’라는 언어는 이 사태(컵이 탁자 위에 놓여있는)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컵을 종이에 그렸으면 그림인데, 그것을 언어로 말했으니 언어가 그림이라는 것이다. ‘컵’은 실제 컵을 그리고 있고, ‘탁자‘는 실제 탁자를 그리고 있고 ‘은’은 두 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사태를 가리키는 것이 곧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을 전통철학에서 표상(representation)이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은 정교한 논리학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고 당대 과학을 염두에 둬서 그렇지, 철학 이론 자체는 낡은 것이다. 영미 철학자들의 특징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사를 잘 몰랐다. 유럽 철학자들은 항상 철학사를 텍스트로 하는데, 영미 철학자들은 철학사는 무시하고 논리학으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중세 철학자들이 이미 한 이야기를 중요한 이야기처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만약 철학사에 밝았다면 이 책을 안 썼을 지도 모른다. 이 시대가 되면 표상이론은 니체 등에 의해서 이미 산산조각이 난 낡은 이론인데, 설사 그 이론이 세련되고 독창적이라 해도 철학의 핵심 그 자체는 낡은 것이다. 어쨌든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그림 이론을 전개한다. 언어는 세계를 그리는 명제들로 이루어지고, 명제들은 사고의 지각 표현이 가능하며, 사고는 사실의 논리적 그림이다. 우리의 사고는 실재의 그림이고 언어는 이 사고를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것은 고전 시대 철학자들이 한 이야기다. 그래서 너무 상식적이다. 실재와 언어의 관계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철수가 내 옆에 있다’고 말할 때 실제 이 명제에서 ‘철수’라는 글자와 ‘내’는 옆에 있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여기에서 그림은 즉물적 의미에서의 그림이 아니라 논리적 형식(logical form)을 얘기한다고 봐야 한다. 세계의 로지칼 폼을 그린 게 언어라는 이야기가 된다. 예컨대 악보, 가수의 노래, 녹음하는 씨디 등은 논리적 형식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악보, 소리, 디지털 코드는 어떤 관계에 있냐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는 실재의 그림이라고 한 것은 이런 뜻이다. 언어와 실재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악보, 소리, 디지털 코드가 서로를 번역하고 있듯이, 언어는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식으로 ‘그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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