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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사유체계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0년 01월 13일(월) 00:00
/조 수 웅 문학박사
‘레비스트로스와 라캉으로부터 데리다와 세르 레비나스로 이어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새로운 혁명은, 시대적인 사상적 배경에서 등장했다.’는 것이 구조주의 타자(the others)의 사유다. 철학 담론이나 근대성 문화가 배제했던 것은 타자들의 사고다. 그래서 미셀 푸코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가 배제(exclude)였다. 그 다음이 바깥의 사고다.
근대 철학은 인간이 자기 안에서 출발해 바깥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구조주의는 반대이다. 안에서 바깥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바깥으로 안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여백(margin)의 사유다. 근대 철학은 코기토, 신, 모나드, 절대의식, 선험적 주체 등 대부분 중심(centre)의 사고이다. 그런데 탈근대사고들은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거꾸로 여백에 해당하는 것의 사고다.
그 다음이 차이의 사유다. 동일성은 중심과 통한다. 그런데 아이덴티티보다 차이, 또는 차이의 운동을 중시하는 사고들이 있다. 좁은 의미의 현대 사상은 이런 식(차이, 운동 등)의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다.
구조주의는 단순한 철학사조가 아니다. 니체 철학, 베르그송의 철학, 후설이 창시한 현상학처럼 큰 철학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구조주의는 철학이라는 담론에 국한되는 사조가 아니다. 예컨대, 언어학자 소쉬르, 기호학자 퍼스, 정신분석학자 라캉,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 신화학자 뒤메질, 사회학자 부르디외, 아동들의 발생 인식론을 연구한 장 피아제, 아날학파 페르낭 보르데 그리고 알튀세르, 푸코 같은 철학자들, 심지어는 생물학의 라콕 등 다양한 분야가 하나의 장(field)을 형성한다.
구조주의는 헤겔, 니체 같은 큰 철학자가 아니고 또 현상학이나 해석학 같은 철학 사조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공명’하는 것이다.
개념을 빌려다 쓰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거대한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철학사조(현대사상)와는 성격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구조주의 하자고 해서 갑자기 모여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한 시대에 퍼져나간 것이다. 개념을 빌려다 쓰고, 영향을 주고받고 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구조주의를 공부하려면 유식해야 된다.
니체나 베르그송 공부는 니체, 베르그송만 연구하면 된다. 그런데 구조주의를 하려면 언어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인식론, 존재론, 심지어 자연과학까지도 읽어야 된다. 구조주의는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되었고, 훗날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사람들 눈에 보였을 때, 구조주의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조주의는 여러 담론의 구체적인 내용을 철학적인 테마로 정리해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상을 지배했던 양대 사조는 실존주의와 맑시즘이었다. ‘두 사조는 하나는 역사의 객관적 법칙을 강조하고, 또 하나는 인간 주체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둘 다 서구 근대 철학의 전형적인 적자였다. 구조주의는 이런 흐름을 깨고 등장했다.’
구조주의 등장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바슐라르의 합리주의, 마샬 게로의 철학사 독해, 스피노자 르네상스와 라이프니츠의 르네상스, 소쉬르와 퍼스의 언어학·기호학,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의 후기 철학, 누보로망의 문학비평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구조주의를 형성하게 되었다.’
구조주의는 철학이기 이전에, 인간과학 방법론이다. 구조주의는 철학으로 출발한 게 아니라 인간 과학(human science)의 방법론으로 출발하고, 나중에 그것으로부터 철학적인 함축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인문과학의 방법론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철학사조로서의 구조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 마치 뉴턴과 칸트, 진화론과 베르그송, 수학과 분석철학이 맞물려 있지만 분리되어져야 하듯이, 구조주의 인간 과학과 철학 역시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과학이, 과학 자체로서 그치지 않고, 그 과학의 근본 전제들에 대한 메타적인 검토, 그 과학의 성과들이 인간 존재에 대해,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해 함축하는 의미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때, 그것은 철학적 성격을 띠게 된다.
예컨대 분자 생물학은 과학이다. DNA를 분석하고, 몇 번째 염색체가 이렇게 생겼다. 이게 잘못되면 무슨 병에 걸린다. 등은 과학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분자 생물학으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명에 나섰다면, 일종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조주의는 언어학·사회학·정신분석학의 방법을 띄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와 언어의 관계, 인간의 본성, 문화의 의미 같은 문제와 연결될 때 철학적인 사조로 화(化)하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과학이 먼저고, 철학이 나중에 오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과학과 철학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상학과 구조주의는 다른데, 현상학은 후설이 창안해 내고,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에게 퍼져나간 것이다.
구조주의는 그게 아니라 여러 인간 과학들이 어떤 공통의 장을 형성하고, 그것들이 함축하는 철학적인 것들이 논의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인간과학들을 잘 모르면 구조주의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현상학은 많이 연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만, 구조주의는 잘 모른다. 구조주의를 하려면 인류학, 언어학, 정신분석학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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