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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6(화) 18:36
순수견양(順手牽羊)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말라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0년 05월 21일(목) 00:00
/이 정 랑 중국고전평론가
“순수견양은 말 그대로 기회를 틈타 ‘힘들이지 않고 남의 양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책이 적에게 노출될 경우 작은 것을 노리다가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으므로 상황파악을 잘해야 한다.”
‘순수견양’의 책략에는 세 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다.
첫째 ‘순수(順手)’이다. 우리에게 공짜로 양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들이지 않고 공짜로 얻으려면, 목동이 빈틈을 보일 때 기회를 틈타 훔쳐 가는 수밖에 없다.
목동이 양 우리를 잠그지 않았거나, 양을 풀어놓은 채 잠들어 버렸거나, 양이 너무 많아서 풀어 놓았는데 감당할 수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면, 반드시 이런 상황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둘째 ‘견(牽)’이다. 우리는 반드시 어떤 동작을 해야만 한다. 과감하게 앞으로 뛰어나가서 양을 끌고 도망가야지, 입으로만 떠들고 있거나 양이 스스로 가벼운 걸음으로 우리 앞에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셋째 ‘양(羊)’이다. 당신이 양 한 마리를 끌고 와서 그 고기를 먹고 싶다거나 그 젖을 짜려고 한다거나, 새끼를 낳게 해서 그 새끼 양이 다시 자라 또 새끼를 낳게 하려면, 양을 끌고 오기 전에 건강하고 정상적인 양인지 확인해야 한다. 양에 대한 이용 가치가 있는지, 적에게 타격을 입힐 가치나 의미가 있는지 손익을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대군이 움직일 때는 맹점과 실수가 많은 법이다.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면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법은 승자도 활용할 수 있고, 패자도 활용할 수 있다.
전국시대, 범수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오랜 전란에 시달린 나머지 통일의 기세가 높았으므로 전국 7웅을 상대로 책략가들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부국강병책을 유세하였다.
당시 진(秦)나라는 국경을 접한 한(韓)과 위(魏)와는 가까이 지내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제(齊)나라와는 전쟁상태에 있었다. 범수는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토와 백성을 더 많이 차지해야 하는데, 멀리 있는 제나라는 쳐서 이겨도 땅을 빼앗지 못하고 전력만 크게 소모하니 우호관계를 맺는 대신, 가까이 있는 한과 위를 잠식해 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바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계책이다.
그는 진 소양왕(昭襄王)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대왕께서 이웃 나라를 치게 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되며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득촌도 즉왕지촌(得寸則王之寸)이요, 득척도 역왕지척(得尺亦王之尺)’이라는 계책이다. 손 가까이 있는 것부터 철저히 챙겨 이득을 얻으라는 것이다. 비록 작더라도 이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소홀히 넘기지 말아야 한다.
유비가 임종할 때 아들 유선(劉禪)에게 ‘선(善)이 작다고 하여 행하지 아니하지 말 것이며 악(惡)은 작더라도 행하지 말라’고 유언했는데, 이말을 이렇게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득이 작다 하여 얻는데 주저 말고, 손해날 일은 작더라도 하지 마라.”
티끌 모아 태산이라 하지 않는가. 진시황 때의 정치가 이사(李斯)는 타국에서 찾아오는 인물들을 배척하지 말고 받아들여 잘 활용할 것을 건의하면서, “황하는 개울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음으로 그처럼 큰 강을 이룰 수 있었고, 태산은 한 줌의 흙이 쌓이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 그처럼 높은 산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하여,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작은 성과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라는 뜻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수견양’의 예로는 명나라 정화(鄭和)의 서양 정복기를 들 수 있다. 사서(史書)에는 이를 명 성조(成祖)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생각지도 않던 소득을 올린 격이다.
정화가 서양(西洋.-여기서는 중국의 남서부를 말함)에 내려간 목적은 당시 폐위되어 도망 중에 있던 황제 건문(建文)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성조의 조카인 건문이 이미 승려로 변장한 채 바다를 건너 도망했다는 정보가 있어서 환관 정화로 하여 그 뒤를 쫓아 화근의 뿌리를 뽑도록 한 것이었다.
정화는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남양(南洋)에 내려 왔지만, 외교적 수완이 전혀 없었던 탓에, 오히려 그곳의 추장과 충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결국 대판 싸움이 벌어졌으나, 전쟁다운 전쟁을 치러보지 못했던 남양의 오합지졸들은 패배를 거듭할 뿐이었고, 정화는 자연스럽게 남양의 여러 소국들을 중국에 귀속시킬 수 있었다.
도대체 해외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정상인이라고 볼 수 없는 환관에게 지휘권을 줬던 이유는 무엇일까?
황궁의 내시였던 정화는 건문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런 정화를 보냈던 것은 결국 실수 없이 건문제를 잡아 죽이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분명한 정치적 타산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실타래처럼 얽힌 이해관계의 혼란 속에서 이외의 소득이 따랐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순수견양’의 성공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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