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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5(일) 18:48
현대철학의 성격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0년 05월 25일(월) 00:00
/조 수 웅 문학박사
현대철학에는 시간성, 우연, 다양성,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짙게 배어 있다. 기존의 철학적 선입견으로 보면 우리의 인식을 방해하는 것, 세상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이성에 대한 타자고 철학으로서는 배척해야하고 소화해야할 것들이다. 그런데 현대철학에서는 외려 그런 것들을 그 자체로 직면하려는, 직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근대철학은 보편성, 합리성, 객관성 등을 추구한 근대 이성주의이기에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는 수학자면서 과학자이다. 그에 비해 현대철학은 예술과 더 밀접 한 관계를 가진다. 그러니까 현대철학은 삶의 불투명성이나 우연, 다양성, 차이, 감각들을 그것 자체로써 대면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즉 이성에 순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그대로 드러내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현대철학은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기존의 많은 철학체계들은 우연, 불투명성 등을 비본질적inessential인 것으로 치부했다. 본질적인 것은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인데, 우연하고 불투명한 것들은 이 세계의 껍데기, 그림자, 비본질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본질적인 것으로 흡수시키려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대존재론의 출발점이 왜 생성과 시간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현대존재론의 출발점은 생성becoming이다. 그래서 당연히 시간에 관한 것이 된다. 전통 존재론이 ‘be’라면 현대 존재론은 ‘becoming’이다. 전통존재론이 ‘영원’을 추구하는 철학이라면 현대존재론은 ‘시간’을 사유하는 철학이다. 그러니까 현대존재론은 기본적으로 생성존재론이다. 이성이 소화하기 힘든 것이 시간이다. 공간은 정복하기 쉽다. 예컨대 무등산은 갔다 돌아올 수 있어 공간은 가역적이다. 그런데 시간은 한번 가면 되돌릴 수 없다. 공간은 종이를 반으로 접을 수 있는 것처럼 조작이 가능하다. 시간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시간을 순치시키는 방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시계이다. 시간을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각도를 보면서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법칙을 읽어내려는 시도들이 있다. 세계가 변화하지만 그 변화에는 패턴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패턴을 읽어내어 미래에 대처하는 것이다. 시간을 순치시키는 한국인 특유의 방식이 점치는 것이다. 점친다는 것은 나의 타자라서 불투명이 감당되지 않는 시간을 순치시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을 내부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예로 언어는 흘러가는 말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레코드판도 마찬가지다. 한번 들으면 사라지는 음악을 붙잡아 둔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다루기 힘든 시간을 잡아보려는 노력들이다. 이렇게 과학기술은 시간을 순치시키려 노력하는 반면 인문학은 시간을 직시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시간을 직시하고 그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견해이다. 시간을 대하는 방식, 태도가 과학자들과는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을 전제하는, 시간을 핵심에 놓는 존재론이 생성존재론이다. 그런 생성존재론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니체,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들뢰즈 등이다. 니체와 베르그송이 현대생성 존재론의 기초를 놓았다면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는 그것을 발전시킨 사람들이다. 니체가 말한 생성,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 화이트헤드가 말한 과정, 들뢰즈가 말한 차이나 사건 등이 바로 전통적 존재론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생성존재론의 개념이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그 개념들이 지향하는 기본 점은 같다. 즉 존재론을 생성과 시간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 형이상학자들 또는 존재론자들은 경험을 종합하거나 구성하기보다 그것의 생생한 존재 자체로서 만나고자 했다. 전통적인 존재론은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경험이란 투명하지는 않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누구를 만날 수도 있고, 갑자기 내 머리에 뭐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경험이란 다양하고 불투명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식으로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경험을 이해할 때가 많다. 그런데 현대 존재론자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런 경험들을 우리가 아는 몇 가지 추상적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현대 존재론자들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전통적 존재론에서 인간의 경험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것에 도달하려면 경험을 벗어나야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런데 현대 존재론은 오히려 그런 경험에 충실해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개개인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충실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추적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삶의 차원이고 개별적 차원이기 때문이다. 현대 존재론자들이 하려는 것은 경험을 경험 자체로 만나게 되는 방식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경험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험을 어떤 구성적 틀에 속에 복속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경험자체로 만나게 되는 방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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