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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0(화) 18:27
공성계(空城計)

빈 성으로 유인한다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0년 10월 15일(목) 00:00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공성계는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미궁에 빠뜨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싸움에서 아군 측에 승산이 없을, 경우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적에게 보여주면서 뭔가 계략을 숨겨두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방법이다.”
용병에는 온갖 수단과 방법이 다 동원되는 것이므로 정석이란 있을 수 없다. 방비할 병력이 없어 성이나 진지가 비었을 경우 빈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성계’는 제갈량이 처음 사용한 이후 사용한 사람이 적지 않다.
‘공성계’는 심리전의 극치이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진진가가(眞眞假假)의 속임수가 유감없이 발휘된 계책이다. 이것은 실패할 경우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지만, 일단 성공했다 하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백만의 군대도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
제갈량이 텅 빈 성에서 무장을 해제한 체 하여 위나라 사마의를 격퇴한 것은 이 방면의 고전이요, 백미다.
‘삼국지 촉지 제갈량 열전’의 기사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갈량이 위나라를 원정하면서 자신은 양평관(陽平關)에 주둔하고 위연(魏延)에게 군사를 주어 동쪽을 공격하게 했다. 양평관의 수비 병력은 불과 1만, 한편 사마의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연과는 다른 방향에서 양평관을 향해 쳐들어왔다.
60리 앞에서 척후를 놓았더니 제갈량은 성안에 있고, 수비 병력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제갈량 진영에서도 사마의의 대군이 접근해온다는 사실을 알고 위연의 주력부대와 합류하려 했으나 떠난 지 오래되어 때는 이미 늦었다. 미처 퇴각할 틈도 없이 양평관에서 사마의의 대군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 전체는 술렁거렸다. 그러나 제갈량은 홀로 태연하게 명령을 내렸다.
“모든 기치와 장막을 걷고 북소리를 그칠 것이며, 사방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성문 앞을 깨끗이 쓸고 다른 사람은 숨어서 꼼짝하지 말라.”
그리고 자신은 성루에 올라가 학창의를 입고 수레에 앉아 향불을 피운 다음, 두 동자가 시립(侍立)한 가운데 거문고를 연주했다.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질풍 같은 기세로 성 아래에 당도해보니, 삼엄한 방비를 펴고 있어야 할 성이 이 지경이 아닌가, 더럭 의심이 났다. 사마의가 생각하기를, 제갈량의 용병에는 절대 모험이 없고 지나치리만큼 신중한 법인데, 이런 정경을 연출하는 것은 분명히 무서운 계략이 숨어 있을 것이다. 복병을 숨겼다가 성으로 유인하여 일격에 깨뜨리든가 아니면 지금 어디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급히 퇴각 명령을 내려 대군을 몰고 달아나버렸다. 사마의는 병법에 정통한 백전의 노장으로서 지모가 뛰어났으나, 결정적인 약점은 의심이 많고 과단성이 부족한 것이었다.
적과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제갈량이 그의 심리적인 허점을 역으로 찌른 것이 적중한 것이다.
이것은 뒷날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전사한 뒤 촉한군의 완전한 퇴각을 돕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편 계략, 즉 “사제갈(死諸葛)이 주생중달(走生仲達)~”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달아나게 한 것과 함께 두고두고 후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한 것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사람에게는 이런 맹점이 있다. 논리나 경험법칙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용병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과 합리성을 기초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실패도 적다. 합리성이 결여된 일이란 그 절반은 이미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의 예처럼 인간사에는 합리와 경험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이며 비합리적인 일도 왕왕 일어난다. 경험법칙만을 고수하다가는 이외의 곳에서 허를 찔려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제갈량이 만약 병법이라는 이론체계와 용병의 타성에만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치욕적인 포로의 몸이 되었을 것이고, 반면 사마의는 그것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한 무제 때 흉노와 싸워 수많은 공을 세운 이광(李廣)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하루는 국경지역을 순찰하다가 사냥을 나온 흉노 세 사람을 만났다. 그들을 무심코 뒤쫓고 있는데 난데없이 수천 기의 흉노가 멀리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광이 거느린 군사는 불과 1백여 기. 이광이 부하들에게, “우리가 지금 달아난다면 적에게 추격당하여 살아남지 못한다. 반면에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복병을 숨겨두고 유인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여 감히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라고 상황을 설명한 뒤, 모두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고 땅바닥에 앉도록 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웃고 떠들며 놀게 했다. 흉노 기병들은 한나라 군대의 행동을 멀찍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주위를 빙빙 돌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숨어 있던 복병이 습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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