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사후의 기독교의 전개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02월 12일(월) 00:00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를 되새겨보자. 소크라테스는 영혼 얘기를 많이 했지만 사람에게 영혼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존재론적 주장을 하지 않았다.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현실적, 경험적으로 그런 것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만 얘기했지 물질 안에 영혼이 따로 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명확히 말한다. 그래서 영혼이 육체를 떠나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오르페우스나 피타고라스의 종교에서 나온 생각이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나 소피스트들이 더 경험적이고 합리적이다. 플라톤은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의 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바울은 플라톤에 가깝다. 인간은 행위, 노력, 수양을 통해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영혼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까 선을 행하고 선해 짐으로써 내 영혼이 선해 지는 게 아니다.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영혼이 선해 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영혼은 실체여서 행위와 관계가 없다. 영혼이 바뀌어야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영혼이 바뀌려면 은총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바울은 철저하게 타력 종교를 내세운다. 그러니까 지식을 쌓고 선행을 베풀고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은 인간의 가치다. 이는 신의 가치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래서 구원은 오로지 은총으로부터 나온다. 다시 말해 지식을 쌓는 것, 선행을 베푸는 것,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핵심은 신에 대한 믿음이다. 신앙 절대주의다. 바울이 이런 영혼론을 전개한 데에는 예수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부활이라는 생각이 큰 작용을 했다.
바울에 의하면 은총을 받으려면 참회를 해야 한다. 참회는 동양의 도 닦기나 반성과는 성격이 다르다. 도 닦고 깨달음을 얻고 반성하는 것은 지적이라면, 참회는 감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은 눈물 흘리고 바닥에 엎드려 운다. 참회한다는 개념은 자기의 죄에 대한 참회다. 반성과는 성격이 다르다.
참회는 선행이 아니라, 오로지 신앙을 갖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태도는 이성과 신앙문제를 낳았다. 바울의 이야기가 이성적으로는 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성과 신앙 논쟁을 낳은 것이다.
믿음과 앎의 문제를 낳았고 이 문제는 중세 1500년 동안을 계속 지배해왔다고 볼 수 있다.
바울 사상은 갈라디아서, 고린도서, 에베소서, 로마서 중에서 로마서가 핵심이다. 바울은 체계적인 저작을 남기지 않고, 전도 행위에 몰두했는데 단지 편지가 남아있다.
바울의 사상은 체계적이지는 않아 모순되거나 모호한 말도 많지만, 후에 기독교의 기본 사상으로 자리 잡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계승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 천년 동안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데 그에 의해 바울이 이해되고 영향력이 커진다.
바울로 인해 예수가, 아우구스티누스로 인해 바울이 살아난 것이다. 예수 사후, 약 반 세기가 지나 예루살렘의 반군들은 로마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다. 그러면서 유태인 사회, 기독교 사회가 변화한다.
이때 복음서들이 쓰여지는데, 로마에 패배한 유태 기독교 계통 사람들이 재건의 구심점으로 예수의 생애를 끌어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쓰여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가지 복음서들이 신약이다. 이로써 그 전의 유태교 전통은 구약이 된다.
유태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신과 유태인 사이의 계약이다. 이때 예수의 생애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예수가 학파나 제자를 키우거나, 체계적인 사상을 전개한 것은 아니고 예수 사후 반세기가 지나서 담론적으로 예수를 부활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끌고 들어온 것만 같지 사상은 다 다른 현상이 빚어진다.
예수를 끌고 들어왔으나 예수에게는 체계적인 사상이 없고, ‘네 이웃을 사랑해라.’, ‘네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낙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몇 마디 말밖에 없다.
그러니까 예수를 구심점으로, 재료로 한다는 것만 같지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다 다르다.
예수의 얘기, 일생, 그리스철학, 유태교 전통, 오리엔트의 이란계통, 이집트계통, 메소포타미나 등 수많은 종교가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히브리파, 헬라파, 그리스파, 마니교 등에서 예수를 끌고 들어오지만 그 사상의 내용은 천차만별로 무수한 기독교들이 만들어진다.
예수를 재료로 한 온갖 형태의 서사들이 지중해 세계에 난무한다. 그러다가 초기 교회를 만든 사람들을 통해서 정통(orthodox)과 이단으로 갈라진다.
정통과 이단이 되는 것은 철학적 논증, 대중에 대한 설득력, 학문적 가치가 아니라 거의가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교도 마찬가지다. 한무제는 유교가 좋은 철학이라고 채택한 게 아니다. 당대 통치수단으로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채택한 것이다.
힌두교나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중세에 사상들은 기본적으로 철학적이기보다 종교적이다.
/조 수 웅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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