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 나라는 공격한다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0년 07월 30일(목) 00:00
/이정랑 중국고전평론가
“원교근공은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가에 대하여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목적으로 행하는 정책이다.”
혼란한 형세에서는 서로가 이합집산과 권모술수를 총동원하여 각자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이럴 때 먼 곳에 있는 적은 공격하지 말고 친교를 맺어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적과는 친교를 맺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친교를 맺게 되면 자신의 심장부에서 변란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원교근공’은 기원전 270년, 전국시대에 위나라 범수가 진나라 소왕에게 건의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전국책(戰國策)’이나 ‘사기(史記)’에 의하면 범수는 당시 진나라의 대외정책이 가까운 나라를 두고 먼 나라를 공격하여 실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니, 반대로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제나라는 아주 멀고, 중간에 한나라와 위나라도 있습니다. 제나라를 치려면 병사를 파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국고가 텅 빌 것이고, 싸워서 이긴다 해도 대왕은 제나라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제나라는 동방의 강국이며, 초나라는 남방의 강국이니, 우리는 그들과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은 후, 우선 인근에 있는 나라들을 병합해야 합니다. 인근에 있는 나라를 공격하면 왔다 갔다 하기에도 편리합니다. 인근에 있는 나라를 점령한 후에 멀리 있는 나라를 쳐도 늦지 않습니다.”
범수의 말을 들은 소왕은 “이것이 바로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방법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대단히 기뻐했다. 소왕은 곧 범수에게 높은 관직과 후한 월급을 주기로 하고 그를 중용했다.
범수의 휘황찬란한 ‘원교근공’ 계책으로 진나라의 세력은 점차 확장되었고 나날이 강성해져서 중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진나라 소왕이 범수를 등용한 것은 귀족을 억눌러 중앙집권을 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위나라에서 망명해온 범수는 진나라 귀족층의 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왕은 범수의 건의에 따라 귀족층을 옹호하던 태후까지 폐하며 왕권을 강화했고, 한·위·조 등 이웃 나라들을 공략하여 국력을 확충하고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진나라를 통일의 길로 이끈 범수의 정책이 성공을 거둔 것은, 당시 많은 수의 백성들이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껴 주변국의 통일을 통한 평화의 길을 염원하고 있었던 데 힘입은 것이었다.
그의 계책은 거리상의 원근을 고려하여 친교를 맺을 것인지 공격할 것인지를 판단한 것으로, 사리에 매우 합당한 책략을 창안한 것이다.
사실 범수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달변가로 이름이 높았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대부 수가(須賈)의 식객으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수가를 따라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제나라에 도착하자 그의 재능을 알아본 왕이 뇌물을 주면서 은밀히 내통하자고 요청했지만, 범수는 거절했다.
그러나 수가는 범수가 제나라 왕의 청탁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국한 뒤 위나라 재상 위제(魏齊)에게 범수가 청탁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고자질했다. 화가 난 위제는 범수에게 죽지 않을 만큼 체벌을 가했다. 그리고 기절해 있는 그를 거적에 둘둘 말아서 변소에 버린 다음 사람들로 하여 오줌을 누도록 했다. 범수는 몇 일간 기절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범수는 그를 감시하고 있던 병사에게 사정했다.
“여보시오. 은혜는 잊지 않을 터이니 나를 좀 살려주시오.”
마침내 범수는 병사의 도움으로 몰래 탈출했다. 그는 변장하고 이름도 장록(張祿)으로 바꾸었다. 후에 그는 진나라로 도망가서 소왕의 신임을 얻어 재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범수는 장록이란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위나라에서는 그가 이미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진나라에 위협을 느낀 위나라가 수가를 사신으로 보내게 되었다. 이때 범수는 재상이었지만 거지로 변장하고 수가를 만났다. 수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엾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솜옷 한 벌을 주면서 말했다.
“진나라에서는 장록이 실세라고 하던데 이번에 내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는 그를 만나는 데 있소. 혹시 주선을 좀 해줄 수 있소?”
우여곡절 끝에 장록을 만나러 간 수가는 장록이 바로 범수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수가는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범수는 사람을 시켜 수가의 손을 뒤로 묶은 채 소의 여물을 먹게 했다. 그러나 그 옛날 식객으로 의탁한 바가 있고, 거지 행세를 했을 때 솜옷 한 벌을 내주었던 마음을 생각하여 목숨만 건질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진나라가 위나라를 정복한 후에 재상이었던 위제의 목은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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