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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17 13:5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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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개헌안에 찬성한 국회의원은 135명으로 부결되었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는 백성이 주인이다. 이 원칙아래서 백성은 다스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섬겨지는 주체로 되는 것이다.
1956년 진보당 사건을 만들어 이 땅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바탕을 압살해 버린 것이다.






419,법학행정,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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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법학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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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419 , 419법학행정레포트 , 419
REPORT
김승민
419 혁명
Ⅰ.관련 data(資料) 조사
政府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하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게 한 歷史(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1958년 신 국가보안법 개정파동을 거쳐 간첩죄, 간첩방조죄등을 강화하여 야당탄압에 이용하고 사회를 점점 반공규율 사회로 만들어 갔다. 이러한 형식논리는 켈젠의 理論(이론)대로 `형태, 수단, 방법`으로서 민주주의를 보게 된다된다. 1952년 국회에서 선출하게 된 대통령 선거제를 직선제로 개헌했다.
1960년 급기야 3.15 政府통령 선거 때는 …(drop)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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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상론하는 것은 피하거니와 다음 몇 가지 주요 事例를 살펴본다. 따라서 선거할 사람과 선출된 사람은 동일성 또는 자동성의 원리 위에 서게 된다된다. 이때 국회의원 재적수는 203명으로 개헌찬성 정족수인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그 주인에 의해 政府(입법, 행정, 사법)가 성립된다된다. 그리고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을 간첩죄의 누명을 씌워 법살한 것이다. 자유당 이승만 政府는 무엇보다도 주권재민의 원리를 형해화 했다. 당시 피난수도 부산에서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면서까지 직선제로 개헌한 것은 이미 국회에서 간선으로는 당선이 어려운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초대 대통령(이승만)에 마주향하여 도 재선제한을 철폐하자는 개헌을 했다.
1948년 당초 내각책임제로 제정된 헌법을 이승만 개인을 위해 대통령제로 개헌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사오입 산술방식을 동원해 가결로 처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이승만 정권은 집권이래 점점 백성들로부터는 이반되는 정치행태를 보여 주었다.